2012년 11월 23일 금요일

18기 마음수련 대학생 캠프? 한번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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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힐링이 진짜 싸이만큼이나 대세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의 상처를 안고는 더이상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게 아닐까? 자신의 마음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그 예로 유치원생부터 영어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직장까지... 도대체 이 시험과 경쟁은 언제나 끝나련지...
그렇다고 그 경쟁의 승리가 그렇게 값진것도 아니다. 결국 사람은 마지막에 다 똑같이 죽음을 맞이하지 않나???

어차피 끝이 같다면 요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과정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같다. 과정이 행복해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기 보다는 매순간순간 행복하길 바라는 것같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행복해지는지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더 높은 점수를 받고, 더 예뻐지고, 더 멋있어지고... 등등 고스펙을 쌓기 위해서만 고민했지
정작, 자기가 무엇을 할때 행복한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행복해진다는 자기계발서를 아무리 읽어도 그때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며칠 지나면 별 소용이 없다.
왜일까?


.....이유는 마음이 변하지 않아서이다.
힘든 마음이 버려지지 않았으니, 계속 힘들 수 밖에

지난  2011년 1월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고,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4.35라는 정말 높은 학점을 받았는데도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항상 시험의 연속이고, 공부하느라 대학생활의 낭만은 거의 없었다. 너무 외로웠다. 혼자 밤에 베갯잇을 적시며 우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역시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마음수련 홍보책자를 봤다.

그땐 너무나 힘들었기에,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행복해진다는 내용이 너무나 내 마음을 끌었다.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책자 뒤쪽을 보니 지역수련원 번호가 있었고 우리 동네에도 있길래, 바로 갔다.
이상한 단체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너무 지쳐서 몸까지 아프기 시작한 나로서는
별 다른 수도 없었고, 바로 등록해서 수련을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수련원에 나가서 매일 3시간씩 수련했다. 저녁에 눈감고 수련하자니 낮동안의 피곤으로 자기도 참 많이 잤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렇게 자면 잘 동안은 수련이 안된다. 그치만 그때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잤던 그 시간이 정말 꿀맛같았다. 자고 일어나면 그렇게 개운했다.

수련 대신 많이 잔 탓인지 2주일이 넘었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그렇지만 낸 돈
(한달에 1과정은 17만원)이 아까워서 그냥 다녔다. 좋아지길 바라던 그 기대를 버린 순간이었다.

수련원에 가면 어떻게 하면 수련을 더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매뉴얼이 있다. 거기 읽어보면 좋아지려는 기대심을 버리라는 내용이 있는데, 그게 먹혔던 것같다. 결과를 바라는 그 마음을 포기하니까 3주부터는 내가 행복한게 막 느껴졌다. 너무 감동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밝은 곳이었나... 내 마음이 비워지니까 정말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수련원에 오시는 8과정 선생님들이 항상 웃고 행복해보여서 나도 8과정까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상담도 도와주셔서 남들에게는, 심지어 가족에게도 없어보일까봐, 부담줄까봐 못했던 연애, 미래에 대한 고민,걱정까지 다 털어놓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지금 나는 8과정까지 다 마쳤고, 내 지난 날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밝고 걸림없이 살고 있어 이 마음을 버리는 방법에 정말 감사하다.





젊었을 때 하루라도 빨리 이 방법을 만나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나는 대학생캠프로 수련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고민 많고 질풍노도의 시절을 보내는 대학생들이 이 수련을 정말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군대에 있는 내 동생에게도 월간 마음수련을 보내주고 있다.  고맙다고 했다. 마음이 뿌듯했다. 소심한 그녀석이 빨리 그 마음을 버리고 넓은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마음수련은 하고 나면 정말 혼자 하기 너무 아까운 공부다.

마음수련을 하면???



미국에서도 마음수련은 참 인기인 것같다. 테넥 수련원은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감당이 안되서, 더 사람을 안 받은 적도 있다고 들었다.
아무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을 찾던 사람은 정말 이 수련을 해볼만 하다.

| 대중문화를 보다 |
준비된 국제 가수_ 싸이

싸이 덕분에 우리나라 문화가 널리 알려지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_ cosmenergy

지금은 과거에 비해서 덜하지만, 한국인들은 줄곧 ‘아메리칸 드림’을 꿈꿔왔다. 세계 최고 경제대국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환상과 광활한 영토에서 뿜어 나오는 기회의 땅이라는 이미지는 수많은 한국인들을 자극시켰고, 보다 큰물에서 놀고 싶은 이들의 도전 정신을 꿈틀거리게 했다. 하지만 말이 좋아 다민족 국가지, 실상 미국에서 동양인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앨범 발매 두 달여 만에 콧대 높기 그지없었던 미국 전역을 뒤집어놓은 동양인이 탄생했으니 그 이름 하여 ‘싸이’다.

이렇게까지 전 세계인들을 들썩이게 하는 ‘대박 중의 대박’을 칠 줄은 당사자인 싸이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던 ‘강남스타일’도 아닌데, 듣기만 해도 춤을 추고 싶은, 그러면서 완성도도 높은 노래 한 곡과 ‘말춤’으로 미국 방송계를 초토화시켜버린 싸이의 ‘세계 정복’은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게 만든다.


어쩌면 싸이는 준비된 ‘국제용 가수’였는지도 모른다. 데뷔곡 ‘새’에서부터 기존 대한민국 가수들과는 차별화된 감각을 구사한 싸이는 애초부터 ‘뛰는 놈 위의 나는 놈’이었다. 기획사에서 몇 년 동안 철저히 준비된 상태로 움직이는 아이돌들과는 달리 직접 곡을 쓰고, 앨범 콘셉트를 잡는 것도 혼자서도 척척 잘하는 싸이는 요즘 들어 각광받는 ‘창조형 인재’다. 게다가 미국 유학파 출신답게 영어 회화도 능통하다. 싸이가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거듭난 데에는 동영상 포털 사이트 ‘유튜브’의 공이 크지만, 단순히 ‘운빨’로 스타가 된 ‘거품’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럼에도 싸이는 지난 미국 진출 이후 귀국 기념 기자회견에서 “‘강남스타일’에 앞서 K-POP을 브랜드화시킨 선후배들의 밥상에 편승한 것일 뿐”이라고 몸을 낮춘다. 그리고 가수 데뷔 12년 동안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주고 지지해준 국내 팬들 덕분이라고 깊은 감사를 표한다. 스스로도 자신이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형 스타로 거듭난 것에 대해 거듭 놀라움을 표하는 싸이는 ‘월드스타’ 하면 떠오르는 거만함보다도 겸손함과 인간미가 넘쳐흐른다.

“‘강남스타일’ 하나 반짝하고 마는 것 아니냐”면서 애써 싸이의 성공을 평가절하하는 반응에도 “이 노래 하나 반짝하고 말아도 영광인 것 같다. 사람이니까 물론 욕심은 있지만 사실 이건 내게 덤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진심 어린 겸손은 오히려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세계인들은 바로 그런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싸이 말대로 그는 미국에 이제 겨우 ‘강남스타일’ 하나만 보여줬을 뿐이다. 앞으로 그가 전 세계에 선보일 싸이 특유의 ‘양(양아치)’ 스타일만 보더라도 싸이가 가진 매력과 재능은 무궁무진하다. ‘강남스타일’ 신화는 ‘반짝 거품’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 그대로 ‘월드스타’라고 불릴 자격이 충분함에도 스스로를 ‘국제 가수’라고 칭한다.

거기에다가 미국에서의 열띤 활동을 펼치고 휴식 없이 바로 귀국. 장기간의 비행에 피곤할 법한데도 깍듯한 90도 인사에, 외신 기자의 질문을 귀담아 들어주기 위해 탁자 위로 몸을 내미는 세심한 배려, 오래전부터 예정된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쁜 미국 활동 중에도 귀국하자마자 대학 축제에 참석하고, 군부대 위문 공연부터 하는 그의 의리는 ‘월드스타’라면 가져야 할 행보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역시 싸이는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는,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국제 가수’였던 것이다.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 싸이, 당신 뒤에 우리가 있다.

글 권진경 문화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YG엔터테인먼트

얼어붙은 아이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다면...행복한 마음수련


| 나는 지금 빼기하러 간다 |
인천법원 소년조사관 김경미씨의 마음 빼기 이야기

나의 꿈과 비슷한 일을 하고 계셔서 소개를 해본다_cosmenergy
인천법원 소년조사관 김경미(39)씨. 그녀는 학교 폭력, 절도 등으로 법원에 온 청소년들을 미리 조사하고 상담해서, 최종적으로 판사에게 소견서를 내는 일을 한다. 우리나라에 전문조사관이란 직업이 흔치 않았던 2002년부터 이 일을 시작한 그녀는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싶으면 상담이나 정신 치료도 받게 하는 등 청소년들을 변화의 길로 이끄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10년 차 조사관이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도와주려면 내 마음부터 긍정적이고 편안해야 하기에 그녀는 매일매일 ‘마음 빼기’를 하며 그 꿈에 한발 더 다가서고 있다.

얼마 전에 중2 여자애를 만난 적이 있어요. 선생님들한테 욕하고 가출하고 온 아이였어요. 근데 이 아이가 첫마디부터 욕이더라고요. 말끝마다 욕을 하는데, 도저히 대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안정이 필요할 것 같아, 3주 후 다시 만났어요.

알고 봤더니 상처가 많은 아이였습니다. 부모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매일 싸우는 모습을 봐야 했고, 이혼 후엔 엄마와 살게 됐는데 엄마는 일 때문에 늘 밖에 있고, 왕따도 당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터득한 건 ‘이기려면 욕을 하면 된다’였어요. 그래서 위기 상황이다 생각하면 욕부터 나왔던 거죠. 아이에게 “네 사정은 안타깝지만, 잘못했기 때문에 시설로 보내질 거다”라고 하니까 울면서 그래요. “왜 나만 가야 해요. 나를 왕따시켰던 애들, 맨날 싸우던 부모님, 나를 이해 못 해준 선생님들, 아무도 안 가는데 왜 나만 가야 해요.” 그렇게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나는 너희 부모도, 널 왕따시켰던 애도, 선생님들도 모른다. 다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너다. 같이 노력하면 분명히 좋아질 거다”라고 했죠.

이곳에 오는 아이들 대부분은 가정 환경이 안 좋아요. 그 아이들에게 세상은 ‘믿을 사람 없고, 두려운 곳’일 뿐이죠. 아마 예전 같았으면 저도 무력감, 슬픔만 느꼈을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이렇게 말해줘요. “그렇지 않다. 세상은 좋은 곳이다. 네가 겪은 세계만 그런 것이다. 네가 바뀌면 세상이 얼마나 따듯하고 좋은지 알게 될 거다. 같이 노력해보자.”

제가 이렇게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매일매일 마음수련원에 가서 마음 빼기를 한 덕분입니다. 사실 상담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치유를 해야 하거든요. 아무래도 부정적인 생각들을 계속 대하며 영향을 받다 보니까, 안 그러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힘을 줄 수가 없거든요. 그렇게 쌓인 마음들을 계속 버리고 빼고 하면서, 늘 새로운 에너지로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된 거죠.

김경미씨가 근무하는 인천법원에는 네 명의 전문조사관이 근무하고 있다. 8년 정도는 가사조사관(이혼하려는 부부 조사)을 겸하다가 2년 전부터는 소년조사관만 전담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조사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잘 들어주는 겁니다.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않고, 거울처럼 비춰주는 거죠. “그래서 힘들었구나.”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환해지고 마음이 열려요. 왜냐하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이해받지 못하고, 야단만 맞았던 아이들이니까요.

근데 사실 처음에는 들어주는 게 쉽지 않았어요. 사람 만나고 이야기 들어주는 걸 좋아해서 상담을 전공했지만, 내 틀이 강하니까, 겉으로는 수긍하는 척해도 속으로는 계속 내 잣대로 저건 아닌데, 하며 시비하고 있더라고요. 내 그릇의 한계를 많이 느꼈죠.

그러다 대학원을 다닐 때였는데, 어느 날 정신과 교수님이 굉장히 환해진 얼굴로 오셔서 “마음수련이 어떤 치료보다 마음 치료하는 데 훨씬 더 빠를 것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저도 마음수련을 시작했는데, 마음수련은 한마디로 자기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또 그렇게 쌓아온 마음을 빼주는 곳이더라고요.

수련하며 처음엔 정말 많이 울었어요. 나 자신만 옳다 생각하고, 상대를 내 뜻대로 하려던 자만심과 이기심…. 그런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요.

그러다 마음수련 4과정 때였어요. 진짜 그동안의 나는 없어지면서 주변 모든 것과 하나 된다고 할까. 스쳐가는 바람과 하나고, 날아가는 저 새와 하나고, 주위의 모두와 하나 되는 체험을 했지요. 아, 그렇구나. 모양은 다르게 태어났지만 이렇게, 하나로 살아가는 거구나. 그때 진짜 상담을 하며 느꼈던 모든 고민들이 해결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그 무렵 법원에서 조사관 일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감사했던 건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진심으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는 거예요. 사람은 다 자기가 주체적으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살아온 삶에서 형성된 관념으로 그 관념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잖아요. 특히 아이들은 살아온 삶이 짧다 보니 어른들보다 훨씬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죠. 부모가 싸우고, 왕따당하고 그런 경험만 한 아이들은 그것이 전부라고 믿는 거예요. 그래서 한순간 잘못된 선택을 한 건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단지 이제부터 바뀔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항상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데, 그동안 너는 너에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가 되는 선택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보자.”

아이들은 상담을 받게 하거나,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게 하거나, 자기 생을 조금만 돌아보게 해줘도 변합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나중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전화해서 “아이가 법원 갔다 와서 눈빛이 확 달라졌다”는 얘기를 하실 때예요. ‘얼어붙은 땅에 봄이 오게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모든 걸 받아주는 사람의 따듯함에는 어떤 마음도 녹기 마련이지요. 아이들은 특히 더 빠르고요.

청소년 사건의 경우, 판사며 변호사며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 보면 참 고맙죠. 옛날에는 다 ‘우리 애들’이라고 했잖아요. 지나가는 애들도 자기 자식처럼 야단도 쳐주고 칭찬도 해주고요. 그렇게 지금도 ‘자기만 생각하는 마음’ 혹은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마음’ 다 빼고,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을 돌보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 세상 위해, 저부터 더욱 부지런히 마음 빼기를 하겠습니다.

정리 최창원 & 사진 홍성훈


“어떤 아이한테는 엄하게, 어떤 아이한테는 장난치듯이, 어떤 아이는 따듯하게…. 대하는 방법이 다 달라야 하는데, 저절로 그렇게 대해질 때가 많습니다. 내 관념이나 틀 등 내 마음부터 늘 빼내다 보니 그렇게 상대를 대하는 지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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